전에 6.25 날이면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하면서 내 동족을 원수로 여겨 분에 떨지 않으면 안 되고,
그 동족을 최후의 하나까지 처서 무찌르고서야 빛나는 이 나라 이 겨레라고 노래하던 나였다.
도대체 누가 내 마음 속에 이러한 미움을 심어 주었는가?
내 형제 자매를 적과 원수로 여겨 헐뜯고 싸워 죽일 생각부터 하게 만든 악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던가?
이 미움이 바로 나라와 민족을 반으로 갈라놓은 악의 실체를 보지 못하게 하고, 그 분단의 아픔을 외면한 채 반세기가 훨씬 넘도록 허송세월 지내 오게 한 것이 아닌가?
그러한 나를 북한 사람들은 꽃으로 맞아 환영해 주었다. 1990년 8 월 11 일 토요일, 조선민항 특별기로 북경을 떠나 압록강을 건너 순안비행장에 도착하였을 때, 비행기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청년들과 여성들이 달려들어 저마다 손에 꽃을 쥐어준다. 금잔화와 백일홍을 받아 들었다.
이렇게 이를 갈던 사람을 꽃으로 맞아준 것은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였다. 백두산 밑 삼지연에 갔을 때 여성들이 쥐어준 들꽃은 너무나 소중해서 내내 사진기 가방에 꽂고 다녔는데 시드는 것이 마음 안타까웠다.
어디서나 꽃을 쥐어 주는 환영인파에 정신을 못 차릴 즈음에도 순간순간 솟아오르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그 울음을 참기 위해서도 목이 터져라 “조국통일”을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