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의 시
아들 자랑이라면 쑥스러워 못하겠는데, 손자 자랑이니 대놓고 합니다. 보수 개신교회에서 부부목사로 일하는 조카의 고2 아들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내 우리말과 글이 좀 서툴러 세종시의 국제고등학교에 들어간 아이죠.
작년 고1 때 박근혜 정권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느라 1인 시위를 벌였답니다. 저는 대학 다니면서도 1인 시위는커녕 대규모 시위대 맨 끝줄에도 섞여보지 못한 터라 너무도 대견하더군요. 작년 11월 제가 촛불시위대에 김밥을 쏜다는 얘기를 듣고는 학교 동아리 친구들과 지도교사까지 모시고 광화문에 나왔고요.
며칠 전 이 싹수 있는 손주가 세월호를 주제로 시를 써서 세종시교육청의 큰 상을 받았답니다. 상금 10만원도 받았다기에, 할아버지가 손자 자랑하려면 술값이 좀 필요하니 그 상금 모두 제게 보내라고 했지요. 4.19를 포함해 세월호를 향기로 비유한 시라는데 아래에 덧붙이니 감상해보시겠어요? 감사하며 재봉 드림.
<4월의 향기>
4월에는 냄새가 있다.
연하다 못해 사라지는 분홍빛 벚꽃 내음과
몇십년 지난 매캐한 최루탄의 냄새와
아직까지도 꺼지지 못하는 통곡의 향이 있다.
4월에는 향기가 가득이었다. 그러나
짙어질 만도한 이 향기들은 흩어진다. 옅게.
짙은 것은 오직 해 진 밤하늘 어둠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들이. 흩어져 날아가 은은하게
이 대지의 하늘을 덮어씌운다. 그리고 이제
떠오른다. 녹슬어 쓰리었지만 떠오른다.
옅은 봄내음의 웃음소리와 함께 달싹이는
메마른 입술가에 영원히
맴돌고 있다.
4월에는 향기가 있다.
바람에 춤추는 벚꽃의 내음과
승리의 함성에 덮인 비릿한 죄의 냄새와
옅은 노란 물결의 잊히지 않는 향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