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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대학에서의 첫 학기에 ‘하와이 마피아 (Hawaii mafia)’의 ‘대부 (godfather)’로 제 지도교수가 되어주기로 한 마이클 하아스 (Haas) 교수의 국제관계론 수업을 맨 먼저 신청하고, 글렌 페이지 (Glenn Paige) 교수의 비폭력 정치학 수업도 신청했습니다.
폭력이나 비폭력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과목 이름이 생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전엔 그런 말조차 들어보지 못했었거든요. 그런데 강의 내용보다 수업을 진행하며 알게 된 교수의 삶이 관심과 흥미를 끌었습니다.
페이지 교수는 1950-52년 사이 한국전쟁에 미군 포병연락장교로 참여한 뒤, 이 경험을 계기로 1959년 미국의 한국 참전 결정에 관해 정치학박사 학위논문을 썼습니다. 이 논문은 1968년 The Korean Decision: June 24-30, 1950 이라는 책으로 출판된 데 이어 한국에서 미국의 한국 참전 결정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어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서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요.
그러나 그는 1973-74년 사이 비폭력의 가치와 중요성을 깨닫고 한국전쟁에 관한 그의 저서를 다시 검토했습니다. 만약 자신이 미국의 한국 참전 결정을 비폭력적인 시각으로 분석했었다면 연구 결과가 어떻게 다르게 나왔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본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고민으로 그는 1977년 자신의 저서에 대한 서평을 미국정치학회보에 실었는데, 어느 책에 대해 저자 자신이 스스로 비판적인 서평을 실은 것은 미국정치학회 역사상 최초였답니다. 이를 통해 그는 ‘폭력을 용인하는’ 정치학자로부터 비폭력 정치학자로의 변신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지요.
그 뒤부터 페이지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에 남북한의 국기를 걸어놓고 그 밑에는 “더 이상의 살상이 없기를 (No More Killing)!”이라는 글을 붙여놓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폭력/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 할 가장 절박한 장소로 한반도를 꼽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폭력/전쟁이 없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 남북한을 방문하며 학자 및 운동가들과 비폭력에 관한 토론회를 가져 왔습니다.
그는 건강이 좋지 못해 1992년 60초반의 나이에 강의를 중단하고 말았으니 저는 그의 마지막 정규수업에 참여한 셈이었습니다. 은퇴하면서 저를 연구실에 불러놓고 김일성 선집과 저작 등 북한 관련 영문서적 100여권을 내놓으며 필요한 책이 있으면 골라 갖고 나머지는 도서관에 기증하라더군요. 책에 대한 욕심이 워낙 큰 터여서 제가 전부 읽겠다고 했는데 아직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3년 1월 제가 하와이대학의 경연 요청을 받고 호놀룰루를 방문했을 때 그는 자신의 차에 저를 태우고 다니며 그 차가 한국산이라고 자랑하더군요. 미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했다가 정치학자가 되어 미국의 한국 참전 결정을 폭력적 시각에서 분석했다는 ‘과오’를 ‘사죄’하듯 이렇게 한반도에 대해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간직해오고 있는 것이지요.
그 은사님의 가르침과 영향으로 저는 ‘비폭력 전도사’를 자처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평화와 통일을 외쳐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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