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흑인 점원들을 흉보는 글을 썼는데, 그 무렵엔 점원들이든 손님들이든 그들은 저에게 매우 부정적인 존재였습니다.

흑인들이 혐오스럽다거나 무섭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던 터에 미국에 들어가자마자 거의 매일 함께 지내다시피하며 직접 보고 느끼게 되는 그들의 생김새와 차림새 그리고 말과 행동 등은 제 편견을 더욱 굳어지게 이끌더군요.

나중에 밝히겠지만, 1992년 4-5월 이른바 'LA 폭동'으로 한인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때 저는 역설적으로 '가해자'인 흑인들을 옹호하고 '피해자'인 한인들을 비판하는 글을 동포신문에 쓰게 되었는데, 1983년 뉴욕 브루클린의 가게에서 일할 때는 흑인들이 오로지 혐오와 공포 그리고 경멸의 대상일 뿐이었지요.

참고로 요즘은 미국에서 '흑인 (Black)'이라는 말 대신 '아프리카계 미국인 (Afro-American)'이란 말이 널리 쓰이는 것 같습니다만 저는 그냥 '흑인'이라고 쓰겠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란 말을 '장애우'라는 어색한 말로 바꾸어 쓰는 것을 싫어하듯이 말이죠.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실제로는 더 나은 대우를 하지 않거나 못하면서 형식적으로만 그들을 위하는 체하는 위선적 용어 같기 때문입니다.

사실 검은색 피부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가장 일반적인 지칭이 '흑인 (Black)'이라면, '유색인 (colored people)'은 좀 에둘러 부드럽게 부르는 말이고, '아프리카계 미국인 (Afro-American)'은 법적/정치적으로 우대하는 표현이겠지요. 속되거나 경멸적인 호칭으로는 '검둥이나 껌둥이 (Negro, nigger)'를 들 수 있겠고요.

그런데 그 무렵 제 주위의 동포들 중에서는 그들을 '사촌'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흔히 '깜씨'나 '까마귀' 또는 '연탄'이라고까지 불렀는데 한국에서 군대생활을 한 흑인들이 이런 말을 알아듣고 화를 낼 수 있으니 (까마귀의) '사촌'이라는 은어를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일부 동포들이었겠지만 우리 한인들이 흑인들을 얼마나 경멸하고 조롱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지요.

* 이 글은 [이재봉의 평화세상] (blog.daum.net/pbpm21)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